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인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가수나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진심으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그때는 나름 진지해서 매일 매일 시간을 내서 그림을 베껴 그리곤 했다. 당시의 내 유일한 삶의 재미는 다섯시 무렵쯤 하던 티비 만화영화를 보는 것과 도서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놀거리도 없었다.

 

만화 속 세상은 현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쨌건 현실이 재미없으니까 만화속에 더욱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혼자서 만화책을 베껴 그리기를 1년 정도 했던 것 같다. 어느정도 그림을 따라 그리는 건 익숙해졌지만 그 이상 발전이 없었다. 나름 나만의 캐릭터도 그려보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흥미가 점점 사라졌다.

 

그때까진 난 학교수업은 대충 따라갔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였다. 말도 별로 없고 해서 아이들은 나 보고 착하다고 했지만 존재감은 크지 않은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갈림길이 생겼다. 학교에서 매월 수학시험을 쳐서 반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난 수학을 못해서 걱정이 많았고 어머니는 나를 수학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성적이 너무 잘 올랐다. 거의 매번 백점을 맞았으니. 아이들은 다들 나를 부러워했고 선생님도 나를 칭찬했다. 그때 공부에 대한 나의 관점이 확립된 것 같다. 별 볼 일 없다고 느꼈던 나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의 꿈은 수학 교수로 바뀌었다. 수학이 워낙 재밌기도 했고 또 수학교수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볼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3때도 안 그랬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누가 깨우지도 않는데 아침에 한시간씩 일찍 일어나 수학문제집을 풀다 학교에 가고 했으니 말이다. 내 생애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학원도 그만두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그때 순간 공부에 대해 잠깐 회의가 들었다. 열심히 해봤자 이모양인데 뭐하러 아둥바둥할까. 그럼에도 공부는 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다. 수학을 꾸준히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고등학교때 이과를 갔을테고 지금 내 모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쓸데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수학교수라는 꿈은 그 때 접었다.

 

아무튼 사춘기 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난 삶에 대해 좀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항상 좀 어둡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런 상태로 학창시절을 내내 보냈다. 그렇게 별 꿈없이 살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꿈이 생겼다. 당시에 사회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상당히 사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도 이런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준만의 책도 그때 처음읽었고 리영희의 책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에 그저 정치외교학과에 가면 이런저런 사회에 관한 연구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학에 가면 이 힘든 일들도 다 사라지고 행복이 펼쳐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고3때 막판 또 여러가지 일들로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결국 원하던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에 못지 않은 대학교에 운좋게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내가 상상하던 신세계 따위는 없었다. 내 열등감이 내 발목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대학에 오니 다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애들이었기에 내 자존심을 지켜주던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처지와 다른 아이들을 비교하게 되고 열등감이 더욱 커졌다. 나는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거의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냈다.

 

다시 꿈이 사라졌다. 뭘해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1년을 휴학하고 군대에 왔고 제대해서 다시 휴학을 했다. 결국 입학한지 4년만에 다시 복학을 했다. 그리고 다시 몇년이 지났다. 지금은 나의 열등감을 조금씩 극복해가면서 내가 진정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찾고 있다. 한번에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도전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마음이 안정되니까 균형도 잡혀가는 것 같다. 더 치열하게 살면서 내 꿈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2012/5/20

------------------------------------

그때도 역시 블로그에 내 모든 걸 열어놓지는 않았던 듯하다. 이 글에 적힌 건 대략적으로 사실이지만,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제외했으니까. 특히 마지막 문단은 더 그렇다. 2011년 말부터는 지금 준비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 글엔 그 이야기가 없다. 나 역역시 소극적인 방법으로 나를 감추고 있었다. 물론 기억력이 신뢰할 만한지 단언할 수는 없다.


이 길에 들어서기 전에 여러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너 그거 해봐라고 말해준 건 아니다. 대학3학년이던 2011년,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그 얘기를 했다. 카페도 아직 기억난다. 난 그에게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길이 너무 불투명하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친구는 힘들겠지만 재미있을 거라고 했고. 그때 이미 남에게 얘기했다는 건, 중요한 발언을 위해 오랜기간을 고민하는 내 성격에 비추면, 그 고민은 훨씬 전부터 했다는 거다. 같은 해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친구가 했던 말도 기억한다. 모 공영방송의 공개방송을 같이 보고 헤어지던 길이었다. 그 일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내 말에, "도전해봐요. 하고 싶으면." 이란 짧은 대답을 남겼다. 근데 그 말을 듣고 정말 내 생각이 변했다. 정말 해보고 싶은데 왜 떳떳이 밝히지 못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많이 바뀌게 됐다. 


지금에 비하면 행동하기 전에 훨씬 더 많이 고민했다. 대략 2년 정도 고민하고 직접 뛰어들게 되었구나. 긴 건지 짧은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뛰어든지도 거의 2년이 되간다.

'이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okingback; My Favorite Things; 잡담들  (0) 2014.08.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