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냥 떠돌까 하다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대림역에서 멀지 않았다. 대림역 출구를 나서자 마자 이곳에 내가 온적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3년 전 학교의 모 포럼(이라 쓰고 동문모임이라 읽는다)에서 장학금과 멘토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멘토였던 선배는 대림역 근처에서 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와 더불어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과 함께, 그 사무소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났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할까. 난 그때 고시를 준비한다고 나를 소개했던가. 왜 이리 먼 옛날 같은건가.
지금껏 간 도서관 가운데 제일 아담하다. 작은 걸로 치면 개포도서관보다 작은 것 같다. 고층 빌딩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오래돼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무척 깔끔했다. 내부 개축을 한지 얼마 안 되는 듯하다.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게 마음에 들었다. 종합자료실은 테이블이 중앙에 따로 있지 않고 벽에 붙어 줄지어 있다. 마치 대학도서관 처럼 말이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 같다.
종합자료실 신착도서 코너를 훑어봤다. 괜찮아 보이는 책이 많았지만 지금 읽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 한 권. <만지는 문화로 초대합니다> 벽과 바로 마주한 좁은 테이블에 앉아 그 책을 열어봤다. 저자는 히로세 코지로, 일본 출신의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시절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전맹이 된 사람이다. 그는 오롯이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성장기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어체로 쓰였기 때문에 읽기도 쉬웠다.
시각장애를 향한 편견에 맞서던 사춘기 시절 일화, 어쩔 수 없이 벽을 느낀 대학 시절 이야기 모두 재미 있었다. 지금은 일본 국립박물관 직원으로서 만지는 전시회를 기획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내가 시각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음악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공교롭게도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시각장애에 대한 내 관념적 이해는 2년 전 어떤 소년을 만나서 조금 현실감을 찾았다. 실력도 모자라는 내가 그 친구를 가르친 게 좋은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친군 이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나. 끝까지 꿈을 이루어가길 빈다.
구로도서관의 백미는 4층의 휴게실이다. 4층 한 켠은 카페다. 언뜻 본 메뉴는 그리 싸 보이진 않았다. 그 옆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옥상이 나온다. 다른 도서관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잔뜩 갖다 놓지 않아서 매우 한적하다. 작은 의자 4개가 벽에 붙어 있을 따름이다. 4층 높이지만, 비교적 상쾌하게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공부하다 바람 쐬러 나오면 기분전환은 확실할 듯하다.
도서관을 나와서 바로 대림천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좀 어둑한 것이 청계천하곤 또 다르다. 이대로 한참 걸으면 밥 때를 놓칠 것 같아 조금만 걸으려 했다. 걷다 보니 아쉬워 다음 출구까지 미뤘다. 그러다보니 밥때를 결국 놓쳤다. 근처에 있던 용김밥에서 김밥 한 줄과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오므라이스 영 아니다. 더부룩한 배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