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도서관이라고 부를 만 한 곳에 갔다. '부를 만 한'이라고 표현한 건 이유가 있다. 보통 말하는 도서관이랑은 달랐다. 학교 안 특별활동실을 개조해 만든 '독서실'은 교실 1개 정도의 크기였다. 벽을 따라 서가가 서 있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그 안에서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외부대출은 불가능했다. 초등학교가 끝나갈 무렵에는 새마을 문고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사무소’ 지하 일부를 터서 만든 곳이었다. 그곳은 냄새로 기억된다. 오래된 지하의 곰팡이 냄새.
본격적으로 도서관이라 할 만한 곳에 간 건 고등학교 때다. 중랑도서관. 내가 그곳에서 처음 빌린 날은 2003년 10월 4일. 그곳엔 그 이전에도 두어 번 갔으나 책을 빌린 적은 없었다. 처음 빌린 책은 강만길의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운기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그리고 도저히 저자와 출판사를 추측할 수 없는 <신소설>이란 책이다. 대체 이 책은 뭐고 왜 빌렸을까. 아무튼 내 기억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두 도서관 홈페이지 대출정보에서 가져왔을 따름이다. 공공기관에 내 기록이 남아있는 게 꺼림칙할 때가 많지만, 이것만은 예외다. 이 대출정보 덕에 내가 당시에 무엇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뿌옇게나마 떠올릴 수 있으니.
당시에 나는 사회를 보는 진보적 시각에 관심이 많았다. 강만길의 책도 그래서 빌렸을 거다.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진보와 민족주의가 뒤섞인 관점으로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책을 그 뒤로도 얼마 간격을 두지 않고 두 번이나 더 빌린 것을 보니, 그리 쉬이 읽은 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국유사>는 아무래도 국사 공부 때문에 빌렸을 거다. 이 책 역시 제대로 보진 않았을 테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가며 봤을 거다. 아 그렇다면 <신소설>은 무얼까. 언어영역 공부 때문에 빌렸던 걸까. 대출이력에 뜨는 책 제목이 책 정보와 링크가 안 돼 있어 알 수가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뜨는 게 없고.
중랑도서관은 그간 초등학교 독서실, 새마을 문고처럼 영세한 곳만 다니던 내게 신세계였다. 일단 앞서 말한 곳들과 비교도 안 되게 컸고(물론 상대적이었지만), 대출 시스템도 더 편리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반납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했던가.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컴퓨터실이나 열람실도 있었고 말이다. 한동안 중랑도서관을 자주 애용했다. 대학교 입학하고 큰 도서관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 보면 이 도서관은 그리 크지는 않다. 총 자료 21만 5천여 개, 도서 자료는 그 중 18만여 권이다. 다른 구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과 비교하면 중간은 가는 듯하다.
여느 도서관보다 이곳이 정겨운 이유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다녔기 때문이다. 집에서 그리 가깝지는 않아도 비슷한 규모의 도서관 가운데 가장 가깝다.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마을버스가 있기 때문에 가기도 편하다. 이 버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심심할 때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빨리 걸으면 삼사십 분 좀 넘게 걸린다(난 상당히 빨리 걷는 편이다). 그리하여 내 주거지와 동선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중랑 도서관 이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고등학생 때처럼 자주 가진 않는다. 이젠 수많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가 됐으니. 그래도 여전히 가장 친숙한 도서관은 중랑도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