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냥 떠돌까 하다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대림역에서 멀지 않았다. 대림역 출구를 나서자 마자 이곳에 내가 온적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3년 전 학교의 모 포럼(이라 쓰고 동문모임이라 읽는다)에서 장학금과 멘토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멘토였던 선배는 대림역 근처에서 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와 더불어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과 함께, 그 사무소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났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할까. 난 그때 고시를 준비한다고 나를 소개했던가. 왜 이리 먼 옛날 같은건가.


지금껏 간 도서관 가운데 제일 아담하다. 작은 걸로 치면 개포도서관보다 작은 것 같다. 고층 빌딩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오래돼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무척 깔끔했다. 내부 개축을 한지 얼마 안 되는 듯하다.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게 마음에 들었다. 종합자료실은 테이블이 중앙에 따로 있지 않고 벽에 붙어 줄지어 있다. 마치 대학도서관 처럼 말이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 같다.


종합자료실 신착도서 코너를 훑어봤다. 괜찮아 보이는 책이 많았지만 지금 읽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 한 권. <만지는 문화로 초대합니다> 벽과 바로 마주한 좁은 테이블에 앉아 그 책을 열어봤다. 저자는 히로세 코지로, 일본 출신의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시절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전맹이 된 사람이다. 그는 오롯이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성장기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어체로 쓰였기 때문에 읽기도 쉬웠다.


시각장애를 향한 편견에 맞서던 사춘기 시절 일화, 어쩔 수 없이 벽을 느낀 대학 시절 이야기 모두 재미 있었다. 지금은 일본 국립박물관 직원으로서 만지는 전시회를 기획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내가 시각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음악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공교롭게도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시각장애에 대한 내 관념적 이해는 2년 전 어떤 소년을 만나서 조금 현실감을 찾았다. 실력도 모자라는 내가 그 친구를 가르친 게 좋은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친군 이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나. 끝까지 꿈을 이루어가길 빈다.


구로도서관의 백미는 4층의 휴게실이다. 4층 한 켠은 카페다. 언뜻 본 메뉴는 그리 싸 보이진 않았다. 그 옆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옥상이 나온다. 다른 도서관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잔뜩 갖다 놓지 않아서 매우 한적하다. 작은 의자 4개가 벽에 붙어 있을 따름이다. 4층 높이지만, 비교적 상쾌하게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공부하다 바람 쐬러 나오면 기분전환은 확실할 듯하다.


도서관을 나와서 바로 대림천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좀 어둑한 것이 청계천하곤 또 다르다. 이대로 한참 걸으면 밥 때를 놓칠 것 같아 조금만 걸으려 했다. 걷다 보니 아쉬워 다음 출구까지 미뤘다. 그러다보니 밥때를 결국 놓쳤다. 근처에 있던 용김밥에서 김밥 한 줄과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오므라이스 영 아니다. 더부룩한 배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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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할 때 걷는다. 걷는 행위가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냥 리듬에 맞춰 걸으면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막상 걷고 돌아오면 해결된 게 없으니, 남들이 보기엔 시간낭비일 것이다. 그래도 걷는다.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내 나름의 방책이다.


어제 강동도서관에 간 것은 그래서다. 물론 반납일자가 다가온 책을 돌려줘야 했고, 마침 책에 집중하지 못할 일이 생겨서 다른 도서관에서 빌렸던 것들도 다 갖다 주기로 했다. 그래서 동대문도서관을 거쳐, 강동도서관으로 갔다. 사실은 동대문도서관 주변 지역도 잘 모른다. 그러나 강동보단 더 자주 지나친 지역이라 생경한 기분을 느끼기엔 부족했다. 260번 버스를 타고 신설동에서 내려 동대문도서관에 책 몇권을 반납했다. 다시 청량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왕십리로 가 5호선으로 환승했다. 다행히, 상일동행 열차가 바로 왔다. 지난번에 마천행을 타서 삽질을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길동역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골목은 시끌벅적했다. 저번과 달리 시장의 끝 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선 비린내 대신 각종 채소 가판대, 반찬 가게가 나를 먼저 맞이한다. 같은 월요일에 들렀고, 시간도 두세 시간 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구나. 좁은 길에서 물건에 눈 팔린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도서관 건물로 향했다. 유독 호떡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열 명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 호떡을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맛이라도 있는 건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걷다보니 다시 그 생선가판대가 보인다. 그 건너편으로 수박과 각종 과일들도.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가, 생선 비린내가 그때만큼 진동하지 않는다. 책 구경이 목적이 아니기에, 도서관 직원에게 책을 건넨 뒤 자료실 안을 한 바퀴 휭 돌고 나왔다. 다시 봐도 아담하다. 4층 휴게실에 꼭 가보자고 다짐했기에 계단을 밟았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그랬는지 4층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들어와서 보니, 이 휴게실은 두 구역으로 구분돼 있다. 안쪽은 유리벽으로 막혀있고, 바깥쪽은 외부 공기가 통하는 곳이다.


안 쪽 테이블에 잠깐 앉았다. 환기가 잘 안 돼 오래있기엔 힘들듯 했다. 예전 일기장을 읽었다. 일기장이래 봤자, 군대 전역하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몇 편이 담긴 작은 공책이다. 초반에만 꾸준히 썼을 뿐 그 이후론, 몇 달에 한 편 쓰는 꼴이다. 그래도 예전 글을 읽으면 지금 고민에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렇다. 지금 내 인생에 관한 중요한 어떤 글을 써야 한다. 그것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 환기 안 되는 휴게실은 별 도움이 안 됐다. 바깥 휴게실이 궁금했다. 문을 열자마자, 확연히 다른 공기의 질을 느낀다. 옥상에 작은 원형으로 패턴을 이루며 뚫린 철제 구조물로 벽을 쳐놓았다. 그 나름 시원하긴 하지만 작은 사이사이로 밖을 바라보는 게 영 거슬렸다. 


시원한 공기에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군복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그의 온 얼굴이 뻘쭘함을 표현한다. 곧 그의 옆에 깊숙이 숨어 앉은 여자와도 눈이 마주쳤다. 그는 예비군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짧은 머리에 개구리마크 없는 전투모를 보니,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상근예비역인가 보다. 상병인지 병장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둘은, 공기 잘 통하는 휴게실에서 사이좋게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방해하기가 싫어 다시 나왔다. 아니 방해받기가 싫어서 나왔다. 어딜가든 이놈의 년놈들이 있다. 지난 토요일 서울숲의 악몽이 떠오른다.


현관문을 나서자 오른편으로 꽃밭이 보였다. 붉은 색 꽃을 피운 키가 큰 식물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요즘엔 꽃사진을 검색하면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도 있지 않을까. 왠지 있을 것도 같다. 다시 눈을 밖으로 돌렸는데 간판이 보였다. 3층 정도 높이에 위치한 ‘봄치과’ 간판. 봄치과라 꽤 인상적인 이름이다… 그 생각을 하며 다시 시장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요리조리 사람을 피하며 호떡집 앞으로 도착했다. 500원 짜리 호떡을 하나 사서 손에 쥐고 다시 걸었다. 보통 호떡보다 꽤나 두껍다. 베이킹파우더를 잔뜩 넣었으려나. 속이 안 익었을까봐 걱정했지만, 잘 부풀어 익어 있었다. 아무튼 맛을 평범했다. 


호떡을 먹고 걷는데 ‘이내과’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세 글자로 병원 이름 짓는 게 흐름인가. 시장 골목을 지나 다른 골목에서 곧 길치과를 발견했기에,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걸으면서 내 진짜 목적이 시작됐다. 길동역을 일부러 지나쳐 골목으로 쭉 걸었다. 걷다보니 신명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온다. 그냥 평범한 학교들이다. 별생각 없이 계속 거닐었다.


다시 큰 길이 나오자 그 길을 따라갔다. 그냥 주위를 둘러봤다. 걷는 사람을,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사람, 달리는 차, 은행나무를 봤다. 은행나무에 벌써 파란 은행이 맺혀있다. 벌써 올해도 그만큼 기울었구나. 자연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제일 쉽게 알려준다. 얼마 있으면 그 은행이 누렇게 익고, 땅으로 낙하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발들에 채이고 밟혀, 구린내를 힘껏 발산하겠지. 나도 이번에는 은행보다 더 크게 진동하고 발산할 거다. 물론 구린내 아니고 향기를. 사실 은행나무보다 길가에 줄지어 선 버즘나무가 더 싱그러웠다. 항상 그 나무의 이름이 궁금했는데 이제야 찾아봤다. 다시 잊지는 않을 테다.


그렇게 지하철 역 세 개를 지나쳤다. 지하철 노선도를 언뜻 떠올렸다. 나는 상일동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상관없다. 막 걷는 게 목적이니. 두 정거장 만 지나면 종점이 가까워진다. 그러나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막 걷는 여정이다. 중간에 방향을 왼쪽으로 꺾어버렸다.


길을 꺾자마자 보인 건 롯데 캐슬이었다. 지나온 거리와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 때 내 발도 피로를 호소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롯데캐슬앞에서 전복을 파는 이동 차량이 보였다. “전복이 한 마리에 500원, 크기는 잘지만 맛은 끝내줍니다. 롯데 캐슬 주민 분들은 00동 앞으로 나와서 구입해 가시기 바랍니다.” 명일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그 전복 파는 차를 지켜봤다. 사람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아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날카로운 경계선이 드러난다. 난 잘 모르겠다.


그렇게 집에 왔다. 정리된 생각은 없었고, 그냥 돌아다니면서 잡다한 생각만 더한 걸음이었다. 그래도 발의 피로에 반비례에 내 걷기욕구가 충족됐다. 그냥 본능적으로 걸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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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도서관이라고 부를 만 한 곳에 갔다. '부를 만 한'이라고 표현한 건 이유가 있다. 보통 말하는 도서관이랑은 달랐다. 학교 안 특별활동실을 개조해 만든 '독서실'은 교실 1개 정도의 크기였다. 벽을 따라 서가가 서 있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그 안에서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외부대출은 불가능했다. 초등학교가 끝나갈 무렵에는 새마을 문고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사무소’ 지하 일부를 터서 만든 곳이었다. 그곳은 냄새로 기억된다. 오래된 지하의 곰팡이 냄새.


본격적으로 도서관이라 할 만한 곳에 간 건 고등학교 때다. 중랑도서관. 내가 그곳에서 처음 빌린 날은 2003년 10월 4일. 그곳엔 그 이전에도 두어 번 갔으나 책을 빌린 적은 없었다. 처음 빌린 책은 강만길의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운기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그리고 도저히 저자와 출판사를 추측할 수 없는 <신소설>이란 책이다. 대체 이 책은 뭐고 왜 빌렸을까. 아무튼 내 기억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두 도서관 홈페이지 대출정보에서 가져왔을 따름이다. 공공기관에 내 기록이 남아있는 게 꺼림칙할 때가 많지만, 이것만은 예외다. 이 대출정보 덕에 내가 당시에 무엇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뿌옇게나마 떠올릴 수 있으니.


당시에 나는 사회를 보는 진보적 시각에 관심이 많았다. 강만길의 책도 그래서 빌렸을 거다.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진보와 민족주의가 뒤섞인 관점으로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책을 그 뒤로도 얼마 간격을 두지 않고 두 번이나 더 빌린 것을 보니, 그리 쉬이 읽은 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국유사>는 아무래도 국사 공부 때문에 빌렸을 거다. 이 책 역시 제대로 보진 않았을 테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가며 봤을 거다. 아 그렇다면 <신소설>은 무얼까. 언어영역 공부 때문에 빌렸던 걸까. 대출이력에 뜨는 책 제목이 책 정보와 링크가 안 돼 있어 알 수가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뜨는 게 없고.


중랑도서관은 그간 초등학교 독서실, 새마을 문고처럼 영세한 곳만 다니던 내게 신세계였다. 일단 앞서 말한 곳들과 비교도 안 되게 컸고(물론 상대적이었지만), 대출 시스템도 더 편리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반납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했던가.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컴퓨터실이나 열람실도 있었고 말이다. 한동안 중랑도서관을 자주 애용했다. 대학교 입학하고 큰 도서관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 보면 이 도서관은 그리 크지는 않다. 총 자료 21만 5천여 개, 도서 자료는 그 중 18만여 권이다. 다른 구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과 비교하면 중간은 가는 듯하다.


여느 도서관보다 이곳이 정겨운 이유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다녔기 때문이다. 집에서 그리 가깝지는 않아도 비슷한 규모의 도서관 가운데 가장 가깝다.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마을버스가 있기 때문에 가기도 편하다. 이 버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심심할 때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빨리 걸으면 삼사십 분 좀 넘게 걸린다(난 상당히 빨리 걷는 편이다). 그리하여 내 주거지와 동선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중랑 도서관 이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고등학생 때처럼 자주 가진 않는다. 이젠 수많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가 됐으니. 그래도 여전히 가장 친숙한 도서관은 중랑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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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정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우선 빌리고 싶은 책을 정한다. 가장 가까운 중랑도서관에서 먼저 대출 가능 여부를 검색한다. 그 다음 서울시립도서관 통합 사이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정말 바쁠 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한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땐 여러 도서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이번에 빌리려던 책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이다. 근작 <소년이 온다>를 빌리려 했으나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대출불가였다. 그 책은 우선 예약만 해두었다. <희랍어 시간>을 통합 사이트에 검색하니, 대출 가능한 여러 곳이 떴다. 도봉, 서대문, 동작, 고척 등... 도봉은 예전에 갔으니 패스하고, 스크롤을 내리던 중 강동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날도 덥고 하니 강동 정도면 괜찮은 거리였다. 


요 근래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여러번 공쳤다. 바로 지난 주엔 관악도서관에 갔다가 1층 로비에서 정기 휴관일이란 문구를 봤다. 화장실에서 어설프게 머리를 매만지고 나왔다. 2주 전 쯤엔 정독도서관에 들렀는데, 역시 정기 휴관일.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 국립현대미술관 구경만 열심히 하고 왔다. 그 비슷한 시기에 종로도서관에도 갔는데, 역시 휴관일;;; 젠장, 하필이면 생각나서 간 날이 모조리 휴관일이었다. 도서관마다 휴관일이 달라서 삽질 퍼레이드는 계속됐다. 그런데도 이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는 매번 도서관 휴관일 검색하는 기본을 잊는다.


뭔 마가 끼었나(한심한 부주의 혹은 넋놓음의 반복일 뿐이다). 오늘 강동도서관 가는 길에도 삽질을 했다. 5호선 상일동 행을 타야하는데 마천 방향을 타고 말았다. 분기점인 강동역을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고, 내렸다. 지루한 기다림을 보내고 다시 상일동 행 열차를 탔다. 길동역에서 내려 미리 검색한 지도를 따라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비린내가 물씬 진동했다. 좁은 길을 따라 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근처에 강동도서관이 서 있었다. 가판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도서관 담이 시작한다. 생선 비린내 나는 시장이야 너무 익숙하지만, 그 근처에 도서관이라니 꽤나 재미있는 조합이다.


책 읽기 좋은 분위기가 따로 있지는 않을 테다. 조용한 곳이면 좋겠지만, 조금 시끄러운 곳에서도 집중이 잘 될 때가 있다. 버스 뒤 어느 자리,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험담에 열을 올릴 때 이상하게 활자에 집중이 더 잘 되기도 하니까. 도서관도 그런 듯 하다. 도서관은 어디에나 있어도 좋다. 일을 하거나 빈둥대거나, 아무렇게나 들러서 머물다 가면 좋다. 삭막한 빌딩 숲 사이에도, 한적한 산책로 사이에도 도서관이 있으면 좋을 거다. 그러니 강동도서관의 위치는 그리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저 당연하다.


건물은 아담해 보였다. 실제로 들어가니 밖에서 본 것 보다 더 작았다. 확언할 수 없지만, 이 도서관 리모델링한 것 같다. 세련돼 보이는 외관과 달리 건물 내부는 오래된 흔적을 그대로 머금고 있으니 말이다. 1층에 바로 문헌정보실이 있었다.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 7~8개 있는 것 같다. 비좁은 공간안에 서가와 테이블이 바짝 붙어있다.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결과 일반도서의 장서수는 약 13만 권이다. 예상보다 많다. 그런데 비슷한 규모의 중랑도서관보다 훨씬 작아보인 건 그저 착각일까.


한강의 책과 황인숙의 시집 <자명한 산책>을 빌려 나왔다. 4층까지 한번 괜스레 올라갔다 왔다. 2층에는 어린이자료실, 3층에는 자율학습실, 4층에는 휴게실이 있다. 어린이 자료실과 자율학습실은 내 관심 밖이다. 난 그동안 수많은 도서관에 다니면서도 열람실에는 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대학 때도 주로 서가 근처에 개방된 테이블에서 공부를 했지, 열람실을 이용한 적은 드물었다. 이유는 아마 귀차니즘이겠지. 휴게실이 독특한 편이다. 밖에서만 봐서 정확하지는 않으나 반개방된 구조인 듯 하다. 비가 와서 흐렸지만 약한 빛줄기가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고 파라솔 같은 게 몇 개 보였다. 아주 예전 리모델링 하기 전 내 모교 도서관 꼭대기층도 저런 구조였다. 가끔 바람이 불면 시원했는데 그 때.


4층에서 내려올 때 한 여자와 마주쳤다. 윗니와 아랫니를 모두 환히 드러내고 열심히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그 멍한 눈빛이 나와 마주쳤는데, 조금의 동요도 없이 시선을 다른 데로 옮겼다. 여전히 칫솔질을 부지런히 하며. 아마 열람실에서 나오자마자 칫솔질을 시작해 그대로 화장실로 걸어가려던 것이겠지. 맞아 지금 점심때가 막 지났군, 하며 계단을 밟았다. 배가 갑자기 고팠다. 도서관을 나오자마자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고 여지없이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비리고, 배고픈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제각기 다른 목적으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어쨌든 그들에게 도서관은 어떤 가능성의 공간이다. 나는 책에서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 나를 깨워주기를, 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쭉 시장골목을 따라 길동역으로 갔다. 다시 한 번 시장의 구조가 독특하다는 걸 깨닫는다. 매우 오밀조밀한 가판의 짧은 연속. 수박 가판대와 생선 비린내와 도서관이라.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다음에 이곳을 찾으면 4층 휴게실에서 잠시 책을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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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립도서관과 동대문도서관, 내가 가장 자주 방문하는 도서관이다. 두 곳 중 동대문에 더 자주 간 듯하다. 종로 방면으로 가는 길에 있다보니 오가며 자주 들른다. 중랑도서관이야 뭐 집 근처니. 그리고 정독도서관과 서울도서관도 위 두 도서관 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가는 편이다. 왜 이리 자주 도서관에 가냐고? 내겐 책 허영이 있다. 어렸을 때, 시내에서 제일 큰 교보문고에 가면 괜히 배가 불렀다. 대학 때 처음 중도에 가서 '이런게 진짜 도서관이구나'했던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책을 사는 건 부담깨나 가는 일. 그래서 어려서부터 빌려보는 게 습관이 됐다.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니 페이지조차 채 넘기지 못하더라도 일단 보고 싶은 책은 빌리고 본다. 그래서 책은 끊이지 않게 빌리는 편이다.


책은 왜 읽을까? 책은 재밌다. 왜 재밌냐면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지식이 채워지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직접 경험보다 말도 안 되게 싸게 내 걸로 만들 수 있다. 안 그래도 비용 대비 효율 이 좋은 책을, 더 싸게 읽으려고 빌려 보는 것이다. 물론 도서관 찾아다니는 시간도 다 비용이지만, 난 시간이 넉넉한 백수니까. 오가는 동안에도 책을 보면 되기에 그리 시간 낭비는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을 하기 전까진 두 군데의 도서관만 다녔다. 학교도서관과 구립도서관. 1학년 때까진 학교 교재를 곧대로 사서 봤다. 복학을 하고 나선 책 사는 것도 상당히 부담됐다. 그러나보니 자연히 서울시내의 여러 도서관을 돌아다니게 됐다. 즉 확실한 건, 내게 무슨 낭만이 있어 도서관 구경을 시작한 게 아니란 말이다. 책 읽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낀다든가 책 향기를 맡으며 생각에 잠기는 일 따위는 없다. 보통 오래된 도서관 책에선 새 책의 빳빳한 잉크 냄새가 안 난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맡는 일이 많다. 그런 걸 감내할 정도로 실용성이 더 중요하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난 서울 시내의 여러 도서관을 순회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익숙해져 이젠 괜히 먼 곳의 도서관도 찾아다니게 됐다. 서울 시립도서관 중엔 남산, 도봉, 용산, 양천, 송파, 종로, 개포 도서관, 노원평생학습관 등에 갔다. 구립도서관은 중랑도서관과 그 부속도서관인 면목도서관, 관악도서관에 가봤다. 구리시의 교문 도서관에도 두어번 간 적이 있다. 예전에 대전에 잠깐 있을땐 엑스포 과학공원 옆에 있는 유성도서관도 가끔씩 갔다. 


이러다 보니 괜히 도서관 욕심이 생겼다.  때는 전국도서관을 다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건 너무 무모하다. 일단 내 목표는 서울의 시립도서관부터 '클리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별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비슷해 보이는 도서관들도 공기가 조금씩 다르다. 정말 말그대로 공기부터 다르다. 수십년 된 건물을 그대로 쓰는 곳(정독)에선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난다. 위치가 다르니 풍경도 다르다. 정독도서관은 건물은 쾌쾌하지만, 정문에서 걸어오는 산책로는 상당히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어쨌든 내 목표는 내 멋대로 느낀 걸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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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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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우산에 올랐다. 버찌가 사방에 널려 있다. 이 놈들이 전혀 반갑지 않다. 특히나 주차장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길 양쪽 벚나무에서 떨어진 버찌들이 온통 검은 물을 들여 놓았다. 보기에만 안 좋은 거라면 별 신경 안 썼을 테다. 제일 짜증나는 건 이 버찌들이 신발 밑창에 낀다는 점이다. 한 개만 끼어도 '삐긱삐긱' 소리가 나는데, 보통은 여러개가 밑창의 틈새로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진하게 익어 찐득해진 과즙 때문에 한 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소리만이 아니다. 걷는 데 이물감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신발을 돌 모서리에 비비며 잔뜩 낀 벚들을 떨쳐내려 하지만 소용없다. 본드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뾰족한 나뭇가지로 일일히 빼내야 한다. 몇 개 빼내면 뭐하랴. 그렇게 몇십 미터 올라가면 다시 가득 떨어진 버찌가 눈 앞에 보인다. 그냥 포기하고 걸을 수 밖에.


벚들을 보며 사람들을 생각한다. 널리고 널린 사람들. 이 좁은 중랑구에도 50만 명이 넘게 산다. 너무 많아서 소중하지 않은 것인지. 그저 소중하지 않은데 많기까지 한 건지. 모르겠다. 대부분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칠 뿐이다. 그런데도 신발에 낀 벚들 마냥 마음속에 사람들이 걸린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종종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니 꽤 자주. 내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그립다. 고종석의 소설 속 말 처럼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면서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리워하다보니 싫어진 걸까. 싫음에도 그리운 걸까.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벗은 찾기 힘들까. 벗들은 없고 벚들만 나뒹군다.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항상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열고 한발짝 다가가면,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고. 사람들이 한 발짝 다가오면 내가 뒤로 물러선다. 문제는 그게 여러번 반복되면, 인간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는 거다. 귀찮음과 두려움의 상승작용이 벌어지는 것 같다. 내 문제도 분명히 있긴 하다. 내려오는데 좁은 오솔길을 막고 아주머니들이 벚 줍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다른 사람이 앞에 왔는데도 못 알아채고, 길을 가로막고 앉아 있었다. 이미 봉지에 한 가득한 벚들. 내게도 새롭고 소중한 벗들이 찾아 왔으면. 아니 내가 찾아야 하는 거지만.


2. 산딸기를 다시 먹어 봤다. 여전히 단 맛은 없지만, 신 맛은 확연히 강해졌다. 역시 난 익지도 않은 산딸기를 먹었던 것이었다. 충분히 신 산딸기. 산딸기는 그걸로 족하다.


3. 내려오는 길에 음악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산중에 스피커 따위는 없으니. 조금 더 걷고서야 궁금증을 풀었다. 멀리 보이는 벤치에 흰 머리의 노인이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코디언인지 반도네온인지 확실하지도 않다. 나중에 알아봤지만 두 악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과연 내가 들은 건 뭐였을까.


노인은 귀에 익은, 이름은 알 수 없는 노래들을 연주했다.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점점 커지다 이내 최고조에 달하고 다시 희미해져 가는 걸 들었다. 그리고 노인이 앉은 벤치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다른 벤치에 앉아 들릴락말락한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 봤다. 등산객들의 발소리와 바람소리 사이로 흐릿한 멜로디가 간간히 전해졌다. 그 노인은 과연 누굴까. 왜 거기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나도 바람부는 산 속에서 하모니카나 불고 싶다. 그럴 실력이 없는 게 문제지만. 


4. 이번 글은 망글이다. 처음부터 시제가 계속 오락가락 했다.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다. 의문형 종결어미도 너무 많이 썼다. 확신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인간과 관계,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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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을 타고 났지만 요새는 특히 그렇다. 7~8시간 자고 깨도 잔 것 같지 않다. 더 잔다고 피로가 더 풀리는 것도 아니다. 번잡한 운동은 못하겠고, 산에 다니기로 했다. 허벅지에 근육이 좀 붙으면 그래도 피로가 덜 해질까 싶어서.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만 가려고 한다. 그 이상 가기엔 시간도 여의치 않고. 일단 해보고 모자라면 더하든가 해야지.

 

산이라 해봐야 동네 근처에 있는 뻔한 산이다. 바로 집 앞은 망우산, 조금 건너가면 용마산, 더 가면 아차산. 이렇게 알고 살아왔는데, 정확히는 아차산 내에 용마봉, 망우봉이 있는 것이었다. 20여년을 다녀 놓고 이제야 알다니; 물론 그래봐야 군대 가기 전 거의 매일 가던 시절 빼고는 기껏해야 한 해에 네다섯번 가면 많이 가는 것이었으니. 이곳엔 거진 일 년 만에 오르는 것 같다. 그제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정상까지 안 가고 돌아 내려왔다. 두시간 정도 걸렸다. 어제는 좀 더 재촉해 용마산 정상까지 다녀 왔다. 더 빨리 걸어 두시 간 반 정도로 걸렸다.

 

햇볕을 피하려고 반팔 위에 셔츠를 걸치고 갔더니 땀이 한바가지였다. 땀 삐질하며 헉헉대며 걷는데, 주변에 다 중장년들. 내 또래에 평일 오전에 산에 갈 사람이 얼마냐 되겠냐만은. 아무튼 크게 신경은 안 쓴다. 당장 떨어진 체력 회복이 급하다. 당장은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그제는 낮잠을 두시간이나 잤다. 한동안 잠 안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듯.

 

이곳저곳에 산딸기가 참 많았다. 빨갛게 맺힌 것이 탐스러워 한 입 먹어보았다. 결과는 후회. 몇 년전 먹었을 때는 새콤하기라도 했는데. 이건 아예 맹맛이다. 덜 익은 건지 뭔지, 몇 개 더 먹었으나 마찬가지.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해야지. 어쨌든 꾸준히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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