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릴 때까지 저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고종석의 문장>에 저자의 다른 책 <9월이여 오라>가 추천도서로 올라와 있길래, 더 정확히는 좋은 선동문의 예시로 나와 있길래 무작정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당연히 <9월이여 오라>를 빌리려 했지만 동대문도서관에는 그 책이 없었다. 꿩대신 닭으로 빌린 책이다.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정보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 뿐이었다.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 읽어보고서야 이 책이 댐 개발반대론과 반핵론을 담았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 관심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문장에 주목하려고 선택했다. 짧은 문장과 단호한 말투로 채워진 페이지들, 읽기에 매우 수월하다. 집에 가는 만원 버스에서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옴켜쥐고 읽었다. 페이지 넘기기가 매우 불편했지만, 입바람을 한 껏 활용했다.


책은 두 개의 글로 이뤄졌다. 하나는 '공공의 더 큰 이익', 다른 하나는 ' 상상력의 종말'이다. 전자는 사르바르 사로바르 댐 건설을 둘러싼 정부, 로비스트, 세계은행의 검은 동맹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는 지역주민들의 투쟁을 따라간다. 후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경쟁을 비판한 글이다.


'공공의 더 큰 이익'. 이 글의 미덕이라면, 글쓴이의 일관된 올곧음일 것이다. 글쓴이는 주민의 입장에 서서 사브바르 사로바르 댐 건설 문제점을 통쾌하게 비판한다. 그렇다고 주장만으로 끝나지 않고, 적절한 통계나 근거자료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글쓴이는 댐 건설로 인한 이주자가 지난 50년간 4000천 만명에 달한다는 추산을 인용한다. 이는 물론 확신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그만큼 셀 수 없는 사람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또한 댐 건설의 핵심 기치인 '원활한 물공급'이 허구이며, 그만한 급수 시스템을 구축할 능력이 인도 정부에 없다는 것도 밝힌다. 결국 이득을 본 것은 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땅을 산 사업자들이며, 대다수의 소시민들은 물공급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이런 일련의 개발 부작용이, 인도사회의 오랜 계급 문제와 얽혀 더 큰 혼란이 벌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간 댐 개발은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왜 가끔 수몰지역 주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처럼. 그래도 그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 한국은 인도보단 덜 막장이구나 생각하게 되지만. 그걸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을 바라보며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처음엔 소외된 약자로서의 그들의 처지에 크게 공감했다. 이내 국가차원의 비용문제도 쉬이 여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송전탑 선로 변경 비용을 국민이 나눠진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평화롭게 일이 해결되는 것이었겠지만. 현실은 씁쓸하게 끝나고 말았다.


인도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기는 힘들지만, 개발로 잃는 것들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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