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리

이제는 누군가 해야할 이야기

잡식하마 2014. 7. 8. 23:17

<이제는 누군가 해야할 이야기> 김영란, 김두식


이야기를 엿듣는 건 재밌다. 어렸을 적부터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직접 말하는 것보다 좋았다. 버스에서 억지로 들어야만 하는 시시콜콜한 사생활 이야기가 아니라면 대화를 듣는 건 영감의 원천이 될 때가 많다. <공부논쟁>에 이어 다시 대담집이다. 대화체라 술술 읽히는 점이 마음을 끈다. 게다가 믿고 보는 김두식의 책이라 내용에 어느정도 신뢰도 있었다. 책의 두 저자는 전직 대법관이자, 책의 집필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던 김영란과 경북대 교수 김두식이다. 둘의 지식과 전문성은 이미 검증됐기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책이 출간된 2013년 5월부터 읽겠다고 다짐했으니, 읽기 시작하는데 1년이 걸린 셈이다.


재밌는 건 둘이 대담을 나누게 된 배경이다. 김두식이 한겨레신문 토요일판에 인터뷰 코너를 맡던 때, 김영란 위원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고 돌아온 건, 김두식의 책을 잘 읽었다는 소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김두식은 2012년 10월에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김영란 위원장이 같이 책을 쓰고 싶다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김두식의 매력이 김영란에게도 어필한 것이다. 그렇게 책이 시작됐다.


책의 부제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김영란, 김두식의 제안'이다. 그렇듯 두 저자는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원인은 '엘리트 카르텔'이다. 이는 김두식이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말한 '신성가족'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책에선 주로 법조계의 어두운 면을 다뤘다면, 이 책은 그것을 포괄한 공직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한다.


대화의 핵심 주제는 이른바 '김영란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이 두 대안이 공직사회 비리를 해결에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의견을 모은다. 청탁과 관련해 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지금 법 체계에선 대가성 있는 뇌물만 처벌가능하고, 대가성 없는 돈은 그렇지 않다. 특정 청탁과 무관하게 계속 돈이나 편의를 제공받다가 어느 순간 청탁이 들어가면, 공무원 입장에선 그동안 받은 게 있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김영란은 구체적 처벌규정과 공무원 행동강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오랫동안 이슈가 돼 온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다.


너무 까다롭게 규제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여기에 대해 김영란은 오히려 규제가 확실해야 성실하고 착한 공무원들이 부정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확실한 규제가 부정의 가능성을 막으리라 보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관련해선 권력 감시와 분권을 이야기한다. 검찰에선 기능중복, 검찰의 사기 저하 등을 이유로 반발하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검찰이 이토록 신뢰를 잃은 것도 극소수의 정치사건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립된 공수처에 나눠지면 검찰이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조직을 위한 무리한 수사, 기소 남발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또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놓고 관련 기관들이 서로 경쟁하게 돼, 수사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즉 가외성의 확보다. 또한 비대대한 경찰조직과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는 검찰조직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이 확실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큰 틀에서 필요성을 말하고 구체적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책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어찌보면 쉽게 말하고, 어려운 건 빠져나가는게 아니냐 비판할 수 있지만. 그만큼 구체적인 사안은 공론장에서 꾸준히 논의돼야 한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책에선 정치자금 관련 논의도 이뤄진다. 정치는 돈 먹는 하마라는 것, 이 현실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공개적이고 원할하게 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등.


300여 쪽 분량에 비해 전문적인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담의 형식을 빌려 입말을 주고받는 점, 전문 법지식이 없는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쉽게 설명한 점 때문이다. 그래도 논의의 핵심을 꿰뚫는 대화가 오가기 때문에 보고 나서 공부할 거리는 많다. 그런 점도 <공부논쟁>과 비슷하다. 가끔 나오는 김영란 위원장의 개인적 경험도 재미 있다. 마침 김영란 법이 다시 이슈로 떠오른 시점, 잘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