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리

<공부논쟁>

잡식하마 2014. 6. 1. 00:24

재미 있는 형제다. 그리고 용감한 형제다. <공부논쟁>은 김대식, 김두식 형제가 같이 만든 책이다. 제목처럼 책은 공부에 대한 두 사람의 논쟁을 담았다. 김두식은 이 책이 '공부, 엘리트, 탁월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힌다. 논의는 한국 대학 교육에 맞춰져 있다. 논의의 출발은 명확하다. '왜 한국의 대학 연구자들은 이 모양 이꼴인가?' 형제는 이 물음에서 나오는 세부 주제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분명히 밝힌다. 왜 이렇게 똑똑한 한국 학생들이 대학교에 오고 나면 멍청해지는가. 이것들은 주로 김대식의 입을 통해 나온다.

 

김두식의 지난 책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이미 '형'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재미있는 캐릭터인 줄 몰랐다. 둘은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상당한 의견차이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접점을 찾아내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 직설적이며 통쾌하다. 동생이 겸손하면서도 날카롭다면, 형은 거침없으면서도 차갑지만은 않다. 동생은 형이 '옳다고 믿으면 누구와의 싸움도 피하지 않는다'고 말 한다. 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말 겁없는 것은 동생'이라고 말한다. 이 조합이 빚어내는 조화가 마음에 든다.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까닭을 형 김대식은 유학파의 문제에서 찾는다. 그는 모든 학자들이 자기 집을 지어야 한다고 본다. 학문적 독립성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학파들은 그렇지 못한다. 자신이 유학한 해외학교 교수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존재가치를 스스로의 학문 성과에서 찾는 게 아니다. 해외 지도 교수와의 인맥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김대식은 서울대의 사례를 직접 들며 심각성을 지적한다. 물론 실명을 거론하진 않지만,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뜨끔할 내용이다. 상당히 표현이 과격하다. 이러고도 이 사람 동료들 사이에서 무사할까 할 정도로(그러나 아직 무사한 걸 보면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조용한' 동료들이 많은 건지도).


김대식은 한국 대학이 연구로 성과를 내려면, 국내 박사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드에서 박사따고 온 사람은 그 나라의 인프라를 누린 것일 뿐이란 거다. 그런 사람이 노벨상을 따봐야 한국 기초과학의 발전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서 '서울대 학사를 나와 외국에서 석박사를 딴 사람들'이 자교 박사를 무시하는 행태도 비판한다. 우리 학계의 독자 발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동종교배(협소함의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자기집을 짓는 긍정적 의미로서)를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그의 비판이 연구에만 향해 있지는 않다. 유학파 교수들의 '기러기 아빠' 행태도 역시 도마에 오른다. 외국 지도교수에 매여 있고, 유학시절의 감성에 젖은 교수들이 자식들도 해외로 유학을 보낸다. 그 시절의 묘한 향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자연히 방학마다 연구실을 비운다. 연구 질이 하락할 뿐 아니라 우리 대학 교육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린다. 대학 교육의 핵심인 교수들이, 정작 자신의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공계 이야기가 주가 되다보니 김대식의 역할이 크다. 동생 김두식은 문과의 사례를 보충하거나 형의 주장을 적절히 보완한다. 명쾌한 대화다. 그러나 읽고 나서 한 켠에 씁쓸함도 생긴다. 우선 책에서 말하는 한국 대학의 암담한 현실이 그렇다. 더불어 이 두 학자 형제의 정체성이다. 그들은 각자의 집단에서 다소 아웃사이더에 속하며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 마저도 한국의 가장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만이 엘리트를 비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그것이 주로 잘 먹히는 풍토)가 문제다.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버클리대 물리학 박사 등을 거쳐 서른 즈음에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된 사람이다. 동생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24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목 높여 해야 할 비판인데도, 이 정체성은 이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들어준다. 예전 강준만이 서울대 해체론을 폈을 때 그 논리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공격을 받았던 과거가 떠오른다. 콤플렉스 때문 아니냐는 것이었다. 김대식 두식 형제가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주장이 더욱 공론화돼 누구나 자유롭게 우리 대학교육과 연구의 개혁에 대해 말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 시작으로서 이 형제의 노력은 칭찬할 만 하다. 그 밖에도 형제의 성장 과정이나 성격 차이를 다룬 부분도 흥미롭다. 재미 있던 것은 형제의 예민한 방광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두식은 예민한 방광 때문에 화장실에 그냥 자주가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물을 안 먹었다고 한다. 김두식과 달리 김대식은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소변 양을 재서, 성인 평균인 500미리 정도가 될 때까지 참았다는 것이다. 예민깨나 하는 나로서도 한 번 참고할 만한 방법인 듯 하다. 간만에 즐거운, 그러면서도 생각거리를 많이 남기는 책을 읽었다.